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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중동에서 D-8 성공할 수 있을까?

러시아 / 아프리카ㆍ 중동 일반 홍성민 중동경제연구소 소장 2010/07/30

지난달 6월 9일 이란에 대한 제4차 유엔제재 결의안이 통과된 가운데, 유럽연합(EU)과 캐나다가 별도의 대이란 제재조치를 발표하였다. 곧이어 호주도 7월 29일 이란이 핵무기개발을 포기할 수 있는 독자적인 추가 제재조치를 실시한다고 발표하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 러시아의 태도이다. 러시아 외교부는 7월 27일 성명을 통해 유엔안보리의 틀을 벗어나는 조치에는 반대하며 EU와 미국의 제재수단은 이란의 핵문제 해법에 되지 않는다며 반대의 목소리를 분명히 냈다. UN제재조치에는 동참하고 EU조치에는 반대하는 애매모호한 러시아의 태도는 경제적 이해관계에서 그 근원을 찾아야 한다.


그 가운데 하나는 카스피해 유전개발에서 찾을 수 있다. 카스피해 원유는 매장량이 풍부하여 ‘제2의 걸프만’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아직도 이 지역의 정세불안정으로 유전가동율은 50% 정도에 불과하다. 막대한 양의 카스피해 원유가 생산되지 못하는 주 요인은 카스피해 원유의 송유관을 운영하는 ‘카스피송유관 컨소시엄(CPC)’을 주도하는 러시아의 반대 때문이다. 카스피해에서 생산되는 원유는 흑해까지 이어지는 1천500㎞ 길이의 송유관으로 수송되는데, 셰브론은 송유관 부족으로 값비싼 운송비를 치루면서 선박을 이용하여 카스피해를 건넌 후 철도를 이용하여 흑해까지 원유를 수송한다.


이 송유관의 연장선상에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이 있고, 이라크의 원유도 수송문제를 염두에 두고 개발되고 있다. 그렇기에 이란은 서방국가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나라가 되고 있고, 핵개발의혹으로 유엔의 제재도 받고 있다. 유조선으로 수송되는 전 세계 원유의 4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에너지수송의 전략적 요충지이다. 최근 아덴만에서 소말리아 해적의 침몰이 잦은 이유도 지중해로부터 홍해를 통과하는 유조선은 물론 상선의 주요 길목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최근 아덴만에서 걸프만으로 이어지는 안보의 중요성이 세계의 최대 관심사가 되고 있다. 


고립무원인 이란이 서방세계를 향해 몸부림치는 배경도 그 배후에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강대국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터키와 파키스탄이 한목소리를 내며 브라질까지 가세하여 이란을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구도가 D-8이라는 중동의 경제협력체를 새롭게 떠올리고 있다.


중동에는 아랍경제협력체 구상을 탈피한 '범이슬람경제협력기구'인 D-8이 있다. 터키가 주축이 된 D-8은 1997년 6월 15일 이스탄불에서 공식출범하였다. 이스탄불선언으로 D-8은 8억 인구와 연간 4천억 달러의 교역량을 갖는 거대한 시장으로 출범하였다. D-8은 선진국 경제정상회담인 G7에 대응하기 위한 기구로 출발한 것이며, 참가국은 주도국 터키를 비롯하여 이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나이제리아 및 이집트 등 8개국이다.


D-8은 본래 터키 수상 에르바칸(Erbakan)이 M-8이라는 명칭으로 제시한 것인데, 무슬림(Muslim)을 의미하는 M이 지나치게 종교적이라는 부정적 반응을 얻자 ‘개발(Development)'을 의미하는 D-8로 그 명칭을 바꿔서 출발한 것이다. 물론 D-8이 국제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선결되어야 할 과제들이 많이 있다. 이슬람이라는 종교적 동질감을 제외하고는 회원국 상호간 정치, 경제적 상황이 다양하기에 현재로서는 유대감이 약한 상태이다. 더 더욱 아랍산유부국이라 할 수 있는 GCC국가들이 포함돼있지 않기에 경제적 영향력 행사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석유문제에 관해 러시아와 중국이 이란측에 가담할 경우, D-8의 결속력은 강화될 수 있다. 이란은 OPEC 회원국들 가운데 두 번째로 원유를 많이 수출하는 국가이지만, 자국의 낙후된 정유시설 때문에 연간 소요되는 가솔린의 40% 정도를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이란의 정유시설은 대부분 1979년 이슬람혁명이전 미국회사들이 건설한 것으로 30년 이상 계속된 경제제재조치로 정유시설 대부분이 낙후된 상태다.


특히 휘발유의 수입은 해외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2009년 9월부터 중국은 이란에 휘발유 수출을 시작하였고, 이란의 일일 수입물량 12만 배럴 가운데 중국으로부터의 수입물량이 전체의 1/3 정도 차지한다. 이 같은 관계는 이란과 중국이 에너지문제에서 공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며, UN 제재조치의 경제적 효과가 미미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러시아와 중국이외에도 아프리카국가들의 태도 또한 이란에게는 큰 버팀목이 된다. 2002년 출범한 53개 아프리카 국가들의 연합체인 AU는 서방국가들과 세계은행(WB)의 차관조건이 지나치게 까다롭기 때문에 최대한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더 높여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만이 AU에서 유일한 G20 회원국인 상황에서 아프리카를 위해 가야 할 길은 중국과의 협력확대라는 것이다. 이에 부응하기 위해 중국은 향후 3년에 걸쳐 아프리카에 100억 달러의 유상원조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런 와중에 EU 가입을 강력히 바라고 있는 터키의 행보 또한 이란에게는 큰 의지력이 되고 있다. 최근 연이은 터키-이집트, 브라질-터키-이란 외무장관회담과 P5+1회담 등에서 터키는 이란에게 큰 힘을 실어주었으며,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등 아랍 3개국과 자유무역지대 창설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터키와 이란은 터키 내 공동산업지대 창설도 추진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일련의 사태는 D-8의 주도국인 터키가 중동의 새로운 중재자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실례이다.


D-8 회의 참가차 나이지리아를 방문한 아마디네자드 이란대통령은 지난 7월 7일 "미국은 세계의 지도자임을 자칭하고 있다"면서 미국을 독재국가로 강력히 규탄하기도 했다. 이 회담에서 이란, 이집트, 터키, 파키스탄 등 8개국 정상들은 회담을 통해 무역 장벽 완화, 외국인 노동자 지위확립을 골자로 하는 경제협정을 체결하기로 합의하였다. 지금가지 살펴보았지만, D-8은 이란의 전략적, 지리적 이점과 함께 막대한 카스피해 원유의 수송망을 배경으로 러시아와 중국을 등에 업고 중동의 새로운 경제협력체로서의 면모를 갖추려 하고 있다. 물론 그 성사여부는 아프가니스탄전쟁과 이라크 전쟁의 종결과 러시아 및 중국의 공조여부에 달려있다. 이란이 고립속에서도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배경중 하나는 분명 D-8에서 찾을 수 있다. G7에 맞서겠다고 출범한 D-8의 향배는 터키-이란-파키스탄의 공조여부에 달려 있으며, 중국, 러시아 및 AU가 지지세력이 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이란은 경제협력이라는 차원에서 에너지자원을 무기로 최대한 협력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물론 가능성이 희박하기는 하지만, 만일 D-8이 성공하게 된다면 중동질서는 또다시 과거의 동서 양극화 현상으로 회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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