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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특집이슈

[월간정세변화] 이란 반정부 시위, 정권의 강경대응에도 지속

아프리카ㆍ 중동 일반 / 이란 EMERiCs - - 2022/10/31




이슬람 혁명 전 이란, 모하마드 레자 샤의 개혁 정책으로 현대화 이룩
1926년 팔레비(Phahlavi) 왕조를 세우고 왕위에 오른 레자 샤(Reza Shah)는 서구화되고 세속화된 국가를 모델로 이란을 탈바꿈하는 정책을 펼쳤다. 레자 샤는 세속화 개혁의 일환으로 여성을 억압하던 전통적인 규범을 타파하고자 했고, 무슬림 여성이 머리카락을 가리는 천인 히잡(Hijab)은 현대화와 진보와 대비되는 후진성의 상징으로서 사라져야 할 것으로 규정되었다. 이에 따라 레자 샤는 1936년 공공 장소에서 여성의 히잡 착용을 금지하는 등 때로는 강압적인 수단을 통해서라도 사회 변화를 촉발하고자 했다. 이처럼 이란에서 히잡은 단순한 복장이 아니라 국가가 추구하는 이념이 구체화되고 국민에게 강제되는 수단이었다. 

이란의 현대화는 1941년 모하마드 레자 샤(Mohammad Reza Shah)가 아버지 레자 샤의 뒤를 이어 즉위하면서 가속화된다. 모하마드 레자 샤는 ‘백색혁명(White Revolution)’이라고 불리는 대대적 개혁을 추진, 1963년에 여성에 선거권과 참정권을 부여했다. 모하마드 레자 샤 통치 시기에는 또한 여성 교육을 확대하고 결혼과 이혼 등의 가족 관계에서 여성의 평등권을 보장하는 등의 변화도 나타났으며, 이란 여성들이 자유로운 복장을 하고 시내를 다니며 활발하게 사회 활동에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서구화와 세속화는 보수적 종교계의 반발을 야기했으며, 세속 성향의 지식인 사이에서도 이란의 고유한 가치와 문화가 위협받고 있다는 위기감이 조성됐다. 한편 모하마드 레자 샤의 강압적 독재에 저항하여 정치적 자유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움직임도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히잡은 다시 정치적 상징이 되었다. 왕정에 대한 저항 표시로 일부러 히잡을 쓰는 여성들도 있었다. 결국 사회 전반에 퍼진 왕정에 대한 국민적 불만과 반감은 1979년 왕정을 타도한 대대적 혁명으로 폭발했다.

아야톨라 호메이니, 1979년 이란 혁명과 함께 ‘여성 히잡 착용 의무화‘
이란 혁명은 독재를 타도하기 위해 이념을 초월하여 연대한 국민적 저항이었지만, 혁명 이후 주도권을 잡은 세력은 아야톨라 호메이니(Ayatollah Khomeini)가 이끄는 종교계였다. 호메이니는 민주주의, 세속주의를 지지하는 정치인과 지식인들을 축출하고 이슬람 가치와 규범이 엄격하게 집행되는 이슬람 정권을 세웠다. 팔레비 왕정 시기에 향상된 여성의 권리와 자유가 이슬람에 따른 사회 건설이라는 명분으로 억압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분야는 바로 여성들의 의복이었다. 1983년 호메이니는 모든 여성의 히잡 착용 의무화를 명령했다. 여성들은 히잡을 쓰지 않으면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었으며, 히잡을 올바르게 착용하지 않은 여성들을 처벌하기 위한 도덕 경찰들이 배치되었다.

2017년 이후 활발해진 이란 내 히잡 반대 운동…이란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발발
이슬람 정권의 여성 억압적 정책에 대한 반발은 히잡 착용 의무화에 대한 저항으로 표출되었다. 2017년 12월 이란 전역에서 확산된 경제난과 정권의 부패에 항의하는 시위 속에서 히잡 반대 운동을 펼치는 여성들도 나타났다. 2017년 12월과 2018년 1월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는 테헤란 시내 한복판에서 히잡을 벗고 서 있는 여성의 사진이 이란 청년과 여성들 사이에서 공유되었다. 2017년에는 또한 미국의 이란 여성 운동가인 마시흐 알리네자드(Masih Alinejad)를 중심으로 이슬람 정권의 복장 규제에 대한 항의 표현으로 하얀 옷을 입는 ‘하얀 수요일(White Wednesday)’ 캠페인이 시작, 이란 국내 여성들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 등 해외의 이란인 이민자 집단과 여성 인권 단체에서도 호응을 받았다. 이처럼 이번 시위 이전에도 이란 내에서는 히잡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었다.

2022년 9월, ‘마흐사 아미니' 사망 사건…이란 '히잡 혁명' 불씨 돼
잠재되어 있던 히잡 착용 의무화와 이슬람 정권에 대한 반감을 폭발시킨 사건은 9월 13일 히잡을 올바르게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 경찰에 체포된 마흐사 아미니(Mahsa Amini)가 9월 16일 의문사한 사건이었다. 이란 정부는 아미니가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혼수상태에 빠진 뒤 사망했다고 밝혔으나, 유가족과 이란 인권 단체들은 경찰의 폭력으로 아미니가 사망했다고 주장하며 항의했다. 9월 16일 아미니의 고향인 이란 서부 쿠르디스탄(Kurdistan)에서 시작된 시위는 곧 테헤란을 포함해 이란 전국 40여개 도시로 확산되었다.

시위에 대한 스포츠 선수, 언론인, 배우, 가수 등 이란 내 유명인사들의 지지도 이어졌다. 10월 16일 이란의 스포츠 클라이밍 선수인 엘나즈 레카비(Elnaz Rekabi)가 서울에서 열리는 경기에서 히잡을 쓰지 않은 채 참여했다. 레카비는 이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경기 도중에 히잡이 의도치 않게 벗겨졌다고 언급하며 사과했으나, 이란 내에서는 레카비가 이란 정부의 압력을 이기지 못해 사과한 것이며 사실은 일부러 히잡을 벗어 경기에 참여함으로써 히잡 반대 시위에 대한 지지를 우회적으로 드러냈다는 여론이 확산되었다. 10월 19일에는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레카비를 환영하기 위해 공항 밖에 운집하는 등 레카비는 히잡 반대 시위대 사이에서 새로운 상징으로 부상했다. 레카비가 주한 이란대사관에 소환되어 여권과 휴대전화를 압수당한 채 이란으로 강제 송환되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주한 이란대사관은 SNS 계정을 통해 소문이 아무런 근거가 없는 가짜 뉴스라고 반박했으며, 이란 정부 또한 레카비가 귀국 이후에 가택연금에 처해졌다는 의혹을 모두 부인했다. 

'히잡 시위', 에너지 산업으로 확대…석유, 천연가스 노동자 시위 참여
시위는 여성과 청년뿐만 아니라 이란 각계각층이 연대하는 범국민적 운동으로 확대되어가고 있다. 10월 10일 로이터(Reuters)통신은 SNS에서 아바단(Abadan), 부셰흐르(Bushehr) 등 이란 남부의 주요 석유 및 천연가스 생산단지 노동자들이 반정부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는 영상이 공유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란 반정부 언론인 이란 인터네셔널(Iran International)은 석유화학단지에서 일어난 시위 지지 파업으로 노동자 100명 이상이 체포되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란 정부는 노동자들의 시위는 임금 분쟁과 관련된 것이며 히잡 반대 시위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은 뒤 일부 반정부 세력이 노동자들 사이로 숨어 들어가 반정부 구호를 외친 것이라고 주장했다. 10월 20일에는 교사들도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의 죽음에 항의하며 연대 시위와 파업을 촉구하고 나섰다.

'자유와 평등, 개방'…젊은 세대가 바라는 새로운 이란의 모습
전문가들은 사회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이번 시위가 이전의 반정부 시위와는 다른 성격을 보인다고 분석한다. 지난 2009년 녹색운동은 테헤란 등 대도시의 중산층과 대학생, 청년이 중심이 된 운동이었고 2019년의 전국적 반정부 시위는 경제난에 시달리는 지방 중소도시의 저소득층이 주가 되어 확산되었다면, 이번 시위는 대도시와 지방, 중상류층과 저소득층 모두를 아우르는 진정한 의미의 국민적 저항이라는 것이다. 아마니의 출신지인 이란 서부 쿠르디스탄의 쿠르드인들, 이란 남부 발루치스탄(Baluchistan)의 발루치인 등 중앙정부의 소외와 차별에 불만을 품어오던 이란 내 소수민족집단 또한 시위에 참여했다. 또한 이번 시위가 이란 정권이 표방하는 이슬람 가치에 대한 전면적 공격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정권이 시위 진압에 성공하더라도 자유와 개방을 위한 사회문화적 개혁 요구를 완전히 억누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여성, 삶, 자유’라는 구호 아래 결집한 시위는 단순히 히잡 착용에 대한 반대를 넘어 이슬람 공화정 체제 자체에 대한 반감을 표출하고 자유, 개혁, 개방을 요구하는 거대한 움직임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번 시위는 자유와 평등을 위한 여성들의 오랜 싸움의 연속이자, 여성만의 문제를 넘어 서방 국가의 오랜 경제제재로 인한 경제난과 이란 정치 지도자들의 부패와 억압에 억눌려온 국민적 불만이 폭발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번 시위가 현 정권을 타도할 혁명으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지수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전문가들은 군부와 보안기구의 이탈 및 조직화된 반정부 세력의 등장과 같은 혁명 성공의 필수 조건이 아직까지 등장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알리 라리자니(Ali Larijani) 전 국회의장와 같이 히잡 의무화 조치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보수파 정권 인사도 있지만, 2009년과 2019년의 반정부 시위를 진압했던 혁명수비대(Revolutionary Guards)와 산하 민병대인 바시즈(Basij)는 여전히 확고하게 정권을 지지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이슬람 공화정 체제 이후의 대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현재의 산발적 시위를 전면적 저항으로 조직화할 반정부 세력의 확실한 구심점도 없는 상황에서 시위가 혁명으로 발전하기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분석이다. 

히잡 시위로 가시화된 이란-서방 갈등…미국, EU 등 서방 국가 개입

미국, 유럽연합 등 서방 국가, 지속적인 규탄
미국과 유럽연합(EU)는 시위에 지지를 표명하며 이란 정부의 과격 진압을 규탄했다. 호세프 보렐(Josep Borrell)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이란 정부의 정당화될 수 없고 묵과할 수 없는 강경 진압이 수많은 인명 피해를 야기했다고 규탄하며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을 준수할 것을 이란에 촉구했다. 보렐 고위대표는 체포된 시위대에 대한 정당한 법적 절차가 보장되어야 하며 아미니 사망 사건을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또한 이란의 용감한 여성들과 함께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여성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입을 권리가 있음을 강조했으며, 이란 정부가 권리를 행사하는 국민에 대한 탄압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10월 20일 미국 정부는 이란 정부의 인터넷 차단을 규탄하며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것을 촉구했다. 한편 워싱턴,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여러 도시와 베를린과 암스테르담 등 유럽에서도 이란인 이민자 공동체를 중심으로 시위대를 지지하는 집회가 열리는 등 시민사회 차원에서도 이란 시위와 연대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미국, "이란에 새로운 제재 가할 것" vs. 이란, "히잡 시위, 배후는 미국” 
미국과 유럽은 단순한 입장 표명을 넘어 이란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면서 실질적인 압박에 나섰다. 미국은 지난 9월 이란 도덕 경찰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으며, 10월 3일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평화로운 시위대에 폭력을 행사한 자들이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하며 이란에 추가 제재를 가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실제로 미국은 10월 6일 이란 내무부 및 정보부 장관과 사이버경찰청장를 제재 대상 명단에 포함시킨다고 발표했다. 이어 10월 17일 EU 또한 이란 도덕경찰청장과 정보부 장관 등 시위에 대한 무력 진압에 관련된 이란측 인사 11명을 제재한다고 밝혔다.

이에 이란은 시위의 배후에 서방 국가가 있다고 주장하며 대응했다. 이란 정부는 주이란 영국 및 노르웨이 대사를 소환해 시위에 대한 언론의 우호적 보도에 항의했으며,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얀(Hossein Amirabdollahian) 이란 외무부 대사는 미국이 폭도들을 지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10월 3일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시위를 폭동으로 규정하고 이란의 전진을 방해하고자 하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내의 배신자들을 사주해 시위의 배후에 있다고 언급했다. 이란 정보부는 영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시위 배후 세력이며, 시위에 침투해 폭력 사태를 일으킨 팔레비 왕당파와 반정부 무장조직, 쿠르드 분리주의, 극단 이슬람주의 테러조직과 외국 요원을 체포했다고 주장했다.

서방 국가의 비판에도 강화된 시위 단속…무차별 총격 이어져
시위를 외세에 의한 안보 위협으로 규정한 이란 정부는 강경 대응을 천명했다. 이미 에브라힘 라이시(Ebrahim Raisi) 이란 대통령은 지난 9월 혼란을 조장하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고 언급하며 강경 대응을 시사했다. 실제로 경찰과 혁명수비대, 친정부 민병대인 바시즈와 시위대와 사이의 충돌로 10월 21일까지 최소 244명이 사망하고 1만 2,500명이 체포되었다고 이란 인권단체는 밝혔다. 지난 10월 5일 인권단체인 휴먼라이트워치(Human Rights Watch)는 보안 병력이 시위대에 실탄을 발사하는 등 무자비한 진압을 펼치고 있다고 전했다. 10월 2일에는 테헤란 샤리프 대학교(Sharif University)에서 보안 병력이 주차장에 갇힌 학생들에게 고무탄과 최루가스를 쏘는 등의 강경진압을 펼치기도 하는 등 이란 정부의 대응 수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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