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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베네수엘라의 반(反)봉쇄법과 경제 자유화 개혁: 그 취지와 평가

베네수엘라 Andrea P. A. Freites H. Catholic University of Chile PhD Candidate 2022/07/14

You may download English ver. of the original article(unedited) on top.


서론: 베네수엘라의 반봉쇄법과 그 이면의 취지
오늘날 베네수엘라와 관련한 세간의 관심사 중 하나는 과연 베네수엘라의 경제가 과거의 저점에서 회복세로 전환되었는지의 여부일 것이다. 니콜라스 마두로(Nicolás Maduro) 정권은 2020년 말부터 베네수엘라 경제의 자유화를 도모하는 일련의 경제 개혁 정책을 실시해 왔는데, 정부의 개혁안을 담고 있는 대표적인 법령으로는 2020년 10월 베네수엘라 의회(National Assembly)에서 만장일치로 가결된 일명 반(反)봉쇄법(Anti-Blockade Law)1)을 들 수 있다. 베네수엘라 행정부는 본 법이 자국 공권력으로 하여금 국외 주체가 가하는 제재에서 초래되는 영향을 완화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수단을 제공해 준다고 설명한 바 있다. 

반봉쇄법의 주요 내용은 금융지원, 공기업 개선, 국내 생산 증진, 민간 투자 증진, 국제투자센터 설립, 투자 보호, 전략 분야 규제 완화이다. 또한 국외 주체에 의한 피해 보상과 국가 자산 보호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기존 법률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고, 이러한 경우에 관련 문서들의 비밀을 보장하고 접근을 제한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베네수엘라 정부에서 간행하는 관보(Official Gazette)는 반봉쇄법의 목적을 ‘외국 및 국제기구 등이 베네수엘라와 그 국민에 대해 시행하거나 지시한 일방적 강제 조치 및 기타 제약·징벌적 조치로 인해 초래되는 악영향을 효과적이고 신속하며 필요적절하게 상쇄, 완화, 저감할 수 있는 법적 수단을 베네수엘라 공권력에 부여하는 특수 임시 규제의 기틀을 확립하는 것’이라 적고 있다. 또한 여기에서는 에서는 상술한 외국의 제재가 베네수엘라 국민의 인권 보호를 저해하고, 국제법 위반에 해당하며, 반인류 범죄이자 베네수엘라 국민이 헌법에 규정된 바에 따라 자유롭고 주체적인 발전을 추구할 권리를 침해할 경우라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반봉쇄법에 대한 분석을 수행한 전문가 일각에서는 동 법이 표면에 내세운 목표에 따라 시행될 수 있을지의 여부를 의심스럽게 바라보는 시각도 있는가 하면, 후견주의적(Clientelist) 정책, 부패, 외환시장 통제, 주요 생산설비 국유화 등 각종 병폐로 고통받던 베네수엘라 경제에 다시 숨통을 틔워줄 잠재력이 있다고 보는 복합적 평가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베네수엘라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책이 미국 및 서방 진영이 가한 제재로 인해 국가 경제에 초래된 악영향을 해소하는 데 실질적으로 얼마나 큰 도움을 줄 수 있을지에 관한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질문에 본격적으로 답하기 전에 반봉쇄법이 실제로 가져오는 효과에 대한 분석을 소개해보자면, 먼저 영국 공영방송 BBC가 공개한 보고서2)는 해당 법이 기존 법체계를 회피해 마두로 정권을 위한 운신의 폭을 넓히면서도 그에 합당한 책임성을 확보하는 데에는 미진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특히 반봉쇄법은 제19조를 통해 대(對)베네수엘라 제재로 인해 집행이 불가능해지거나 제재로 인한 피해 극복 및 보상에 장애가 되는 각종 법규의 시행을 중지할 수 있는 권한을 행정부에 부여하고 있으며, 대통령의 판단에 따라 관련 문서나 정보를 기밀로 처리해 공개를 제한함으로써 국민이 관련 문서를 자유로이 열람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도 함께 담고 있다.

또 다른 일부 전문가들은 반봉쇄법이 경제 분야의 정책 결정권을 행정부로 더욱 집중시키고 기존의 헌법적 통제 기제를 무력화할 수 있는 법적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례로 베네수엘라 헌법 제150조는 의회가 국익과 관련된 계약을 대상으로 한 검토 및 승인권을 지닌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반봉쇄법은 마두로 정권이 국가 자산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법적 조치를 일방적으로 취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게다가 그 과정이 대중의 요구 없이도 비밀리에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마두로 행정부는 부패나 후견주의를 방지하는 기능을 수행하던 기존 규제를 우회해 국영기업을 자의에 따라 선택적으로 민영화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 받는다. 이와 같은 사례는 반봉쇄법이 행정부에 대한 공적 견제를 저해하고 민주적 질서를 약화시키는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방증한다(De la Cruz and Correa, 2022).

마두로 정권이 원래부터 자의적인 정책 집행과 투명성 부재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에서 앞에서 살펴본 문제는 충분히 우려를 자아낼 만하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베네수엘라의 반봉쇄법은 단순히 경제적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에 그치지 않고 국가 자산에 대한 정치적 통제력 행사 수단을 새로이 확보한다는 이면의 목적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의 경제 개혁안 내용과 성과
지금까지 베네수엘라 정부가 발표한 개혁안을 살펴보면 국영기업에 대한 민간 참여를 증대하고 특정 상품에 대한 가격 통제를 철폐한다는 내용이 눈에 띄는데, 이는 마두로 대통령도 완전히 파산 상태에 접어든 국가 경제의 부활을 위해서는 자본을 추가로 확보할 필요가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마두로 대통령은 먼저 우고 차베스(Hugo Chávez) 전 정권이 2007년에 국유화한 인터넷 및 통신 분야에서 꾸준히 손실을 기록하던 공기업 중 5~10%가량을 민간 투자자에 매각한다고 발표했고, 과야나(Guayana) 지방에 소재한 석유·가스 기업 등을 대상으로 한 외국의 투자를 촉진하는 법안도 입안할 예정이다(Munita, 2022). 이처럼 베네수엘라 정부의 정책과 기조가 변화하면서 럼(Rum)주 제조업체인 론산타테레사(Ron Santa Teresa) 등 일부 기업은 지난 1980년대 중국과 소련의 사례를 참고해 경제적 자유화 촉진을 목적으로 주변국 통용 화폐로 표기된 주식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한편 로이터(Reuters) 통신과의 인터뷰에 참여한 기업인들은 베네수엘라 정부가 미국 달러 등 안전 화폐로 표기된 주식의 발행도 허용해줄 것을 정부에 요청할 계획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전문가 분석에 의하면 마두로 행정부가 반봉쇄법에 담은 조치는 해외 투자를 유치하고 민간 부문 참여를 독려해 효율성을 제고한다는 목적을 추구하면서도, 이러한 변화가 경제 전반에 대한 국가적 통제 약화를 초래해 차베스주의적 정치권력 독점을 위협하지 않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또한 지금까지 베네수엘라의 개혁안에 포함된 조치는 △ 달러 통용화, △ 필수적 수준의 단기적 물가 통제, 그리고 △ 이전까지의 국유화 정책을 대체하는 선택적 민영화 기조라는 3개 주요 영역에서의 정책 변화를 시사하는데, 앞에서 간략히 살펴본 선택적 민영화 이외의 두 가지 영역에서 나타난 성과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미국 달러를 비롯한 외화의 도입은 가격 통제 조치나 관세의 일부 철폐와 병행 실시되면서 해당 통화를 보유한 이들에게 있어 베네수엘라의 초(超)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악영향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다음으로 초인플레이션을 통제하기 위한 베네수엘라 정부의 노력도 일부 성과를 거두고 있는데, 마두로 행정부가 자국 볼리바르 화폐 단위를 기존의 100만분의 1로 변경하고 베네수엘라 중앙은행(Central Bank of Venezuela)이 관리하는 디지털 볼리바르 통화를 신설한다는 방침을 발표한 이후, 국내 시장의 가격 안정성이 낮은 수준으로나마 회복되고 2022년 3월에 추산된 물가상승률은 거의 1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는 등 긍정적 방향으로의 단기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Berg, 2022).

베네수엘라 경제 모델의 근본적 변화
베네수엘라가 지난 23년 동안 가히 혁명이라 할 만큼의 큰 변혁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베네수엘라가 채택한 발전 모델은 지난 한 세기간 별다른 변화의 징조를 보이지 않았다. 학계에서는 20세기 초부터 베네수엘라에서 시행된 발전 모델을 가리켜 천연자원 착취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소득을 국민에게 분배한다는 이른바 경제적 지대(Economic Rent) 개념에 기반한 자본주의라 지칭했다(Hardy, 2009). 차베스주의를 표방하는 정권이 수십 년간 집권한 베네수엘라에서는 생산 과정의 단일 분야 집중, 자원 착취, 정치적 후견 주의라는 문제점을 지닌 상기 발전 모델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오늘날 들어서는 베네수엘라가 이전까지의 전통을 깨고 근본적 수준의 경제적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데, 이는 과연 무슨 까닭에서일까?

위 질문에 답하자면, 이른바 21세기형 사회주의를 기치로 내건 차베스 정권이 긴 집권기에 걸쳐 전면적 국유화 정책을 펴면서 베네수엘라 경제의 성격이 크게 바뀐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경제 분야에 대한 국가 통제의 강화를 시사하는 지표로는 거의 50개에 달하는 신규 법률의 시행을 들 수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례로는 토지법(Land Law)과 석유·천연가스법(Hydrocarbons Law)을 들 수 있다. 이 중 전자는 국내 토지에 대한 국가의 절대적 통제권을 확립했고, 후자는 베네수엘라 정부가 산유 기업 지분의 과반수를 보유하는 주체로 등극하도록 만들었다.

시민단체인 재산권 관측소(Observatory of Property Rights)에서 2016년에 내놓은 특별 보고서에 의하면 마두로 대통령 집권기에는 사유재산 개입 비중이 이전 차베스 정권 13년의 수치에 비해 상당히 줄어들었지만, 정부가 자산 압류를 제재 수단으로 삼으면서 각종 기업과 산업, 농장에 대한 국가의 위협이 계속되는 환경이 조성되기도 했다. 여기에 베네수엘라 정부가 자국에 대한 서방 진영의 제재를 이른바 경제 전쟁에 비유하면서 2014년의 공정 가격 기본법(Organic Law of Fair Prices)과 이후 개정안, 그리고 2016년의 경제적 비상사태 선포령(Decree of Economic Emergency) 등 강력한 조치에 나서자 베네수엘라의 사유재산권은 상당한 수준의 상시적 위협에 노출되는 상황에 놓였다. 이와 같은 변화가 계속되자 베네수엘라는 오늘날에 이르러 정부 고위층이 모든 통제권을 휘두르면서 제도적 비용은 증가하고 여타 주체의 경제력 재량권은 축소되는 이른바 가부장 국가(Patrimonial State)의3) 모습을 띠게 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을 인지한 마두로 대통령은 이전의 차베스 식 모델에서 다소 벗어나 민간 자본을 동원해 국영기업 운영을 지원하는 방안으로 선회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많은 경제 핵심 분야에서 민간기업이 국가를 제치고 주요 세력으로 부상하는 중이다(Berg, 2022). 일례로 2020년에 베네수엘라로 들어온 원자재의 90%가 민간 기업용이었는데, 이는 2019년의 수치에서 약 65% 상승한 수치에 해당한다. 또한 공식 통계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정부가 시행한 선택적 민영화 정책도 정부의 공공재 및 서비스 제공 부담을 완화해 재정 적자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준 것으로 나타난다(Berg, 2022). 이처럼 베네수엘라에서 달러 통용화와 경제적 자유화 조치가 실제로 시행에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가부장 국가 건설이나 21세기형 사회주의를 표방한 차베스주의 혁명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마두로 대통령에 있어 역설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베네수엘라의 경제 모델이 큰 변혁을 겪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 베네수엘라 정부의 경제 자유화 개혁에 대한 해석
2022년 세계 이민 보고서(World Migration Report)가 추산한 바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의 경제 및 인본주의적 위기로 인해 총 560만 명의 인구가 나라를 등지고 탈출했으며, 이 사태를 극복하는 데 있어 지난 2년간 정체 상태에 놓였던 경제를 자유화하는 노력이 필수적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노력은 일견 베네수엘라가 주창하는 볼리바르 혁명(Bolivar Revolution)에 근본적으로 반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마두로 대통령은 달러 통용화와 볼리바르 혁명이 상충적 관계가 아닌 상보적 관계에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Singer, 2021).

하지만 위에서 살펴보았듯 경제 자유화 조치가 마두로 정권이 미국 및 서방 진영에서 부과한 제재를 우회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함과 동시에 정부의 권위주의적 통제를 강화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는 측면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정치학자 루이스 살라만카(Luis Salamanca)는 현재 추진되는 정책이 베네수엘라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권위주의적 통제 없이도 국가를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음을 보이는 데 목적을 두고 있는 것처럼 포장되고 있다고 평가하며, 현재 베네수엘라의 정치 상황상 선거를 통한 경쟁에서 자유로운 마두로 대통령은 자신의 이미지 개선에 큰 힘을 쏟지 않고도 충분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즉, 마두로 행정부의 경제 개혁 정책은 이 모든 요소를 철저한 계산하에 둔 일종의 정치적 포석으로 해석해 볼 수 있는 것이다.


* 각주
1) 본 명칭은 국가 발전과 인권 보장을 위한 헌법적 반(反)봉쇄법(Constitutional Anti-Blockade Law for National Development and Guarantee of Human Rights)이다.
2) https://www.bbc.com/mundo/noticias-america-latina-54478149
3) 가부장 국가는 법치주의, 공권력 분립에 기반한 발전된 제도적 틀이 부재한 상태에서 개인의 통치에 의해 지배되는 국가를 말한다(García Larralde;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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