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영역 건너뛰기
지역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카자흐스탄의 헌정 개혁: 이상 뒤에 숨은 현실의 문제

카자흐스탄 Bexultan Zhapar International Institute for Counter-Terrorism (Herzliya, Israel) Researcher 2022/05/27


You may download English ver. of the original article(unedited) on top.


서론
카자흐스탄의 카심 조마르트 토카예프(Kassym-Jomart Tokayev) 대통령은 2022년 3월 16일에 자국 헌법에 대한 개혁안을 최초로 발표한 이후, 4월 29일에는 통상적 의회 결의가 아닌 국민투표를 통한 개헌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을 면밀히 분석해보면 의회 권한 강화를 골자로 하는 해당 개헌안은 카자흐스탄에 대규모 변화를 불러오기보다는 동년 1월의 시위 사태로 초래된 대통령과 행정부의 이미지 악화 문제를 개선하는 선에서 그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단된다.

2022년 초에 경제와 사회 분야의 불안, 불평등 심화, 지도층 분열로 인해 발생한 폭력 시위 사태는 곧 카자흐스탄 전체를 휩쓸었고, 러시아를 비롯한 외세의 개입이 있고 나서야 비로소 진정 국면에 접어들 수 있었다. 이 시위는 막후에서 최고 권력을 행사하던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Nursultan Nazarbayev) 전 대통령이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토카예프 현 대통령이 카자흐스탄의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방면의 개혁안을 발표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따라 카자흐스탄 국민은 2월부터 개혁안 시행에 관한 대통령의 공약이 신속히 이행되기를 기대하고 있으나, 국내 정치 지도층의 분열, 그리고 카자흐스탄의 주요 동맹국인 러시아가 제재를 받으며 생겨난 간접적 악영향이 신속한 정책 변화를 어렵게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현재 논의되는 개헌안은 행정부 수장에 권한이 집중된 초(超)대통령제에서 의회 권한이 강화된 체계로 이행하는 데 목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자체장과 장관, 의회 의원 임명에 대통령의 동의가 필요한 데다가 개정되는 헌법의 내용도 형식적 성격에 불과해 대통령 권한의 실질적 축소로 이어지지는 않을 공산이 크다.

카자흐스탄 개헌안 국민투표의 목적
비록 카자흐스탄 정부는 국민투표의 목적이 사회적 민주화 및 견제와 균형의 정치 체계 확립을 위한 개헌에 있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1) 국민 참여에 대한 대외 홍보, (2) 대통령의 위신 유지, (3) 국민 지지 확보라는 다른 목적도 존재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즉, 2022년 1월의 시위 사태로 이어진 제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엄청난 시간과 재정이 소요되기에, 이번 국민투표는 대통령의 이미지 개선에 집중하는 일종의 정치적 기법(Political Technology)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는 것이다.

(1) 국민 참여에 대한 대외 홍보
이번 국민투표가 수행하는 주요 기능 중 하나는 특히 서방 진영을 중심으로 한 국제 사회에 카자흐스탄이 민주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인식을 전파하는 것이며, 이에 따라 현재 유럽연합(EU)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홍보 활동이 전개되고 있다(Taylor and Fox, 2022). 유럽에서는 원래부터 카자흐스탄의 인권 상황을 꾸준히 감시해 왔으나, 지난 1월의 시위 사태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가려지면서 현재 해당 문제에 대한 조사를 주장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카자흐스탄은 EU를 위시한 유럽 사회에 이번 국민투표를 바탕으로 카자흐스탄이 민주화를 도모하고 있음을 강조해 자국 이미지 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2) 대통령의 위신 유지
개헌안 국민투표는 1월의 시위 사태로 인해 악화된 대통령의 위신을 다시 세우기 위한 목적도 지니고 있다. 게다가 토카예프 대통령이 3월 연설에서 지적한 바 있듯이 현재 카자흐스탄이 직면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상당한 규모의 재원 투입이 필요한데, 이번 개헌을 통해 권력을 형식적으로나마 다른 주체로 이전할 경우 국가적 과제 일부에 대한 책임을 떠넘길 수 있는 명분도 확보하게 된다. 이러한 체제에서 특정 정책이 성공을 거두게 되면 대통령이 모든 영예를 안게 되지만, 정부 시책이 실패할 경우의 책임은 의회로 돌리는 전략이 나타날 수 있다.

(3) 국민 지지 확보
대통령이 최근 내놓은 ‘신(新) 카자흐스탄’ 구상을 보다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에는 근본적 수준에서의 혁신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이 ‘카자흐스탄 2030’이나 ‘카자흐스탄 2050’과 같은 혁신 전략안과 정치 분야의 이념적 정책을 병행 추진했던 사례와 같이, 신(新) 카자흐스탄 구상 실현의 기반이 탄탄하지 않기 때문에 현 토카예프 정부도 정치적 활동의 영역에서는 이념적 도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만 한다.

카자흐스탄 현 정부는 ‘신(新) 카자흐스탄’ 구상이 전임자의 통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하면서, 이번 국민투표 제안 또한 국민에 선택권을 부여함으로써 민주화의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정권의 의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절차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본 국민투표의 목적에는 국민에 의사를 묻는다는 사실 자체를 홍보해 차기 선거 때까지 토카예프 정권을 위한 명분을 확보한다는 점도 존재하며, 현 정권은 이를 통해 자신의 정당성을 제고하고 국민으로부터의 신뢰를 향상시키는 전략을 추진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더해 토카예프 정권은 개헌안 투표의 결과를 자신에 대한 민중의 지지를 가늠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카자흐스탄 개혁안이 지닌 문제
금번 국민투표 개헌안은 견제와 균형의 정치 체제 확립, 국민의 정책 결정 참여 진작을 통한 사회적 민주화, 나자르바예프 전 정권의 그늘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대 개막을 비롯해 일단 형식적으로는 좋은 의도를 지니고 있지만, 현 정부의 개혁안에는 (1) 공론화 기간의 부족과 투표율 문제, (2) 대통령의 권력 유지 시도, (3) 시급한 개혁의 지연 과 같은 문제점이 존재한다.

(1) 공론화 기간의 부족과 투표율 문제
2022년 6월 5일에 개헌안 국민투표를 시행하기로 한 결정은 4월 29일에 카자흐스탄 의회에서 공표된 것으로, 따라서 해당 결정으로부터 실제 국민투표에 이르기까지의 시간 이 한 달 남짓에 불과하다. 이처럼 짧은 시간만으로는 개헌안에 대한 대중적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지기 힘들기에, 현 정권이 어떤 의도에서 이와 같은 기간을 설정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겨나고 있다. 일단 국민투표를 시행한다는 사실 자체는 많은 카자흐스탄 국민에 주권 의식을 고취해주지만, 과연 이렇게 급박한 시일 내에 투표를 진행하는 것이 옳은 결정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존재한다.

정책 결정 과정에 대한 국민의 참여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은 카자흐스탄의 고질적인 문제였으며, 이에 따라 카자흐스탄 국민은 정치 참여 기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다가 선거의 투명성에 대해 지니는 신뢰도 낮은 수준에 머물러 투표를 통한 정책 결정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게다가 카자흐스탄의 중앙 선거 관리 위원회(Central Electoral Committee, 이하 카자흐스탄 선관위)가 선거의 정당성과 투명성 지표를 올리기 위해 투표율을 조작해왔다는 사실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카자흐스탄 정부 기관과 언론에 따르면 카자흐스탄 국민의 과반수가 국민투표안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난다(CCS, 2022). 하지만 에스엔피 글로벌(S&P Global)이 발간한 보고서에서 지적하는 바와 같이, 많은 전문가들은 카자흐스탄의 선거가 대중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고, 이에 따라 원활한 정권 교체에 대한 확신 부족, 지도층에 대한 국민의 상향식 의견 전달 제약 등의 문제가 있다고 분석한다(S&P Global, 2022).

또한 6월에 예정된 투표에서는 개별 개정안이 국민의 선택에 따라 각각 논의되지 않고, 대신 이들 전부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서 평가하게 된다. 현재 제시된 개정안의 숫자는 50개를 넘어서는데, 일반적 유권자의 경우 의회의 권한 강화라는 한 가지 주제를 제외하면 나머지 개정안에 대해 가진 정보가 많지 않다. 카자흐스탄 정부가 각 개정안에 대한 정보 제공을 소홀히 하면서 개헌안에 대한 국민적 이해도가 떨어지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국민투표 참여율이 상당히 낮을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 경우 카자흐스탄 선관위가 투표율을 임의로 부풀리는 전략을 선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 대통령의 권력 유지 시도
현재 제시된 개헌안에는 기존의 초(超)대통령제에서 의회의 권한을 강화해 견제와 균형의 정치 체제를 이루기 위한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국가 지도층의 분열로 지난 1월 정권의 존립 자체가 위기에 빠진 적이 있는 상황에서 국가 최고 권력을 잡고 있는 토카예프 대통령이 자신의 권한을 자발적으로 쉽게 포기할 것이라 보기는 힘들기에, 상기 조항들이 실제로 실현될 가능성은 작다. 게다가 실제로는 토카예프 정권이 인사이동과 신규 임명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강화해 나가는 정황이 포착되는데, 일례로 1월 시위 사태 당시 국가 안보 위원회(National Security Committee) 구성원 중에서 현 정부 지지 세력의 비율이 늘어나기도 했다. 카자흐스탄 정부가 지금 처한 상황을 고려하면 토카예프 정권이 앞으로 원활한 국정 운영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권한을 늘려갈 것으로 보인다.

언론인 바딤 보레이코(Vadim Boreiko)와의 인터뷰에서 카자흐스탄의 정치학자 다심 삿파예프(Dasym Satpayev)는 토카예프 대통령이 자신의 권력을 앞으로도 유지하기 위한 전략을 펴고 있음을 주장했다. 그는 카자흐스탄 헌법 제42장 5절이 대통령 연임을 금지하고 있음에도 특정인이 첫 임기를 수행한 뒤 꼭두각시를 세워 다음 임기를 맡김으로써 징검다리 형식으로 집권하는 편법으로 본 조항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지만, 이번 개헌안에서도 이 문제가 전혀 수정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이처럼 기존 헌법의 문제점 다수가 수정 없이 남게 된 것은 대통령 자신의 입지를 지키기 위한 판단에 의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Satpayev, 2022).

(3) 시급한 개혁의 지연
오늘날 카자흐스탄의 집권 세력은 더 이상의 상황 악화가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사회 분야를 중심으로 한 제반 문제 해결에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2022년 3월 토카예프 대통령이 연설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한 문제를 공개적으로 인정한 뒤에도 카자흐스탄 정부의 공약은 아직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3월 초, 다국적기업 케이피엠지(KPMG) 카자흐스탄 지부의 중역은 해당 국가에 존재하는 실업자의 수가 200만 명에 달한다고 주장했다(Zhumashev, 2022). 이는 국제 사회의 대(對)러시아 제재가 시작되기 이전에 추산한 것으로, 만약 이로 인한 경제적 악영향을 고려하면 실제 상황은 더욱 심각할 것으로 추측된다. 게다가 카자흐스탄의 실업률은 2022년에도 더욱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렇게 되면 추가 시위가 발생해 사회적 혼란이 일어날 가능성도 올라갈 수밖에 없다.

결론 및 향후 전망
현재 카자흐스탄에서 추진되고 있는 개헌안은 대통령의 사회적 민주화 의지를 홍보해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한 성격을 강하게 가지고 있기에 장·단기적으로 별달리 큰 변화를 몰고 오지 못할 것으로 판단된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지금까지 쌓인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재정을 보유하지 못한 카자흐스탄 정부가 국민투표를 통한 명분 축적과 신규 공약을 통한 국민 회유를 시도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바탕으로 한 향후 전망은 다음과 같이 정리해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이번 헌법 개정안은 국민투표에서 통과될 공산이 높지만, 토카예프 대통령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할 것이다. 또한 국민투표 참여율이 지나치게 낮을 경우, 형식적 차원에서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모종의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개헌 이후에도 현 정부는 각종 사회 문제의 책임을 의회 등 여타 기관에 떠넘기는 형식으로 해결하고자 할 가능성이 크며, 이 외에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의 면책 특권을 축소하고 측근을 체포하는 등 야당 세력과의 경쟁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카자흐스탄 정부의 활동이 지금껏 보여주기 식에 그치면서 실제 개혁책의 시행이 지지부진한 점을 감안하면 가까운 미래에 정부의 국내 및 대외 정책에서 혁신적인 방향 전환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본 페이지에 등재된 자료는 운영기관(KIEP)EMERiCs의 공식적인 입장을 대변하고 있지 않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