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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베네수엘라 암호화폐 페트로의 현황과 시사점

베네수엘라 양훈식 세종대학교 경제통상학과 조교수 2019/08/13

하이퍼인플레이션과 페트로의 도입
지난 5월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에 따르면, 2018년 베네수엘라의 연간 인플레이션율은 약 13만 %를 기록했다. 매년 물가가 1,300배 상승하고 매달 가격이 80% 이상 상승하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렇게 물가가 빠르게 상승하는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율을 정확하게 추정하기는 어렵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18년 베네수엘라의 인플레이션율을 위의 수치보다 훨씬 높은 93만 %로 추산했고, 2019년 인플레이션율은 1,000만 %에 다다를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통상적으로 한 달 동안 물가수준이 50%  이상 상승하는 것을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분류하는 것을 감안했을 때, 베네수엘라는 심각한 수준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은 2016년부터 2019년 4월까지 약 5,400만 %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고 밝혔고, 2013년 대비 2018년 GDP는 40% 가량 감소하는 등 베네수엘라의 경제는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이러한 경제 위기 속에서 2018년 베네수엘라는 정부가 주체가 되어 발행하는 암호화폐 ‘페트로(Petro)’를 도입하였다. 페트로는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암호화폐로, 1단위의 페트로가 1배럴의 베네수엘라 원유와 교환되도록 설계되었다. 미국의 금본위제 하에서 미국 달러가 금의 가치에 연동되어 있었던 것과 유사하게 페트로를 베네수엘라 원유 가치에 연동함으로써 화폐가치의 안정을 추구한 것이다. 또한 베네수엘라의 화폐인 볼리바르의 가치를 페트로에 연동하고, 볼리바르의 액면가를 10만 분의 1로 절하하는 리디노미네이션(화폐 액면 단위 변경)을 시행하게 된다. 페트로를 통하여 볼리바르의 가치를 실물자산과 연동시킴으로써 화폐가치의 안정을 도모함과 동시에 이 암호 화폐를 통해 국제적인 금융거래를 수행함으로써 미국의 경제제재를 우회하고자 한 것이다.

 

원유를 기반으로 하는 화폐의 도입에 대한 주장은 휴고 차베스 전 대통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9년 차베스 전 대통령은 중동의 주요 석유 생산국 지도자들과 회담에서 원유를 담보로 하는 화폐를 만들어 기축통화인 달러를 대체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금본위제에서 탈피한 미국 달러의 불안정성과 달러를 통한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것을 주장한 그의 생각과 현재의 블록체인 및 가상화폐에 관한 기술이 더해져 현재의 페트로에 이르게 된 것이다.

 

도입 과정과 현황
2018년 1월 마두로 대통령은 1억 단위의 페트로를 발행할 계획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페트로의 발행이 원유를 담보로 하는 불법적 채무를 발행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이유로 야당이 다수를 차지하는 의회의 반대에 부딪치게 된다. 하지만 의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발행을 강행하여 2월부터 한 달 동안 페트로의 사전판매가 진행되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페트로를 판매하여 33억 달러의 수익을 거두었다고 발표했으나, 이러한 성과를 뒷받침할 근거는 불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사전판매 이후 지난 11월부터는 공개판매를 시작하여, 사천사백만 단위의 페트로가 현재까지도 관련 웹사이트를 통해 판매되고 있다.

 

대략 일 년이 지난 지금, 페트로가 일상생활의 거래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증거는 희박하고, 인플레이션은 잦아들지 않았다. 또한 많은 이들이 실제로 페트로가 베네수엘라 원유와 교환가능한지에 대한 의구심을 품고 있다. 페트로가 발행되고 6개월 후 로이터통신이 취재한 바에 따르면,1) 페트로와 교환 가능한 원유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했고, 페트로를 지불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으며, 페트로의 운영과 관리를 맡고 있는 담당부서가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고 한다. 주요 암호화폐 거래소에서는 페트로를 취급하지 않고 있고, 페트로의 작동 방식 및 많은 부분이 기존 암호화폐 대시(Dash)와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표절 의혹까지 받은 바 있다.

 

이렇듯 페트로가 지불결제 수단 및 투자 자산으로써 긍정적으로 여겨지지 않는 상황에서, 많은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다른 종류의 지불결제 수단을 사용하고 있다. 블룸버그의 한 기사에 따르면,2) 약 30%의 일상적인 거래가 달러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빠른 속도로 가치를 잃어버리는 자국통화 대신 가치가 안정적인 달러를 사용하는 이른 바 非공식적 달러화(unofficial dollarization) 현상, 즉 통화대체(currency substitution)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3년간 베네수엘라 인구의 약 10%가 다른 나라로 이주하였고, 이 이주민들이 친지들에게 송금해주는 달러의 규모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이러한 현상을 더욱 확산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자국통화를 비트코인과 같은 다른 종류의 암호화폐로 바꾸려는 거래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9년 베네수엘라의 비트코인 거래량은 수차례 최대치를 갱신한 바 있다. 심지어, 물물교환을 통해서 거래하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고 페트로의 이용을 확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을 강제하고 있다. 국제원유거래에 페트로를 사용할 계획을 발표하는 한편 페트로를 이용하여 연금을 지급할 계획을 밝힌 바 있고, 여권 발급, 특허등록 및 상표 등록 수수료에도 페트로 사용을 의무화하였다. 또한, 지난 7월 마두로 대통령은 베네수엘라의 은행들에 페트로를 취급하도록 의무화하여 은행을 통해서 쉽게 페트로를 구입하고 저축할 수 있도록 지시하였다.

 

시사점
베네수엘라의 경제 상황과 운영 방식에 대한 불분명한 발표에 의해 페트로는 그 시작부터 많은 사람들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만약 페트로가 대외적으로 발표한대로 시행되었다면 성공적으로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베네수엘라 화폐가치의 안정을 달성할 수 있었을까? 즉, 페트로와 원유의 교환이 투명하고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일상적인 거래에서 페트로를 쉽게 화폐로 사용할 수 있는 기반 시설이 갖춰진 상황을 가정했을 때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수 있었을지 생각해 봄으로써, 이 정책의 실패가 정책의 잘못된 실행에 있었던 것인지, 또는 그 정책 자체가 잘못 선택되었는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은 정부의 재정적인 어려움을 조세수입 및 부채로 해결하기 어려울 때, 즉 일반적인 재정충당 이외의 방법으로 정부지출을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서 화폐발행을 통해 화폐주조차익, 즉 화폐 발행을 통한 수입으로 정부지출의 재원을 조달하는 데에서 발생한다. 현재 베네수엘라의 정치 및 경제적 상황을 미루어볼 때, 설사 페트로가 지급결제수단으로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는다고 하더라도, 재정지출 부문에서의 특단의 조치가 취해지거나 해외 투자자로부터의 차입이 원활히 이루어지길 기대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종국에는 페트로의 발행을 통해 정부지출을 해결할 유혹에 빠지게 될 것이고, 현재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초래한 과다한 화폐발행과 마찬가지로 페트로의 과다발행으로 현재와 동일한 문제를 야기하게 되기 쉽다. 하이퍼인플레이션에 대한 기존의 사례들이 보여주듯이, 재정부문의 개혁 없이 화폐 제도의 개혁만으로 하이퍼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즉, 페트로가 성공적으로 도입된 상황이었다고 하더라도, 페트로의 도입만으로 하이퍼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토마스 사전트 교수의 하이퍼인플레이션 관련 연구에 따르면, 3) 하이퍼인플레이션 상황에서의 물가상승은 경제주체의 미래에 대한 기대에 기인하는 부분이 크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정부정책의 변화가 이루어질 경우 빠르게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자국통화의 가치를 달러화에 고정시킴으로써 인플레이션을 억제한 90년대의 아르헨티나를 생각해볼 수 있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통화위원회 제도를 설치하여 성공적으로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완화시킬 수 있었는데, 자국통화 가치를 달러화에 고정하기 위해서 정부가 더 이상 자국화폐를 원하는 만큼 발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가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즉, 정부가 화폐 발행을 통한 재정조달을 멈출 것이라고 경제 주체들이 기대하게 되는 것이 하이퍼인플레이션을 해결하는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기존의 하이퍼인플레이션 사례들과 마찬가지로, 베네수엘라의 상황은 하이퍼인플레이션의 해결을 위해서는 화폐 개혁 뿐만 아니고 재정 부문에서의 개혁이 이루어져야 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많은 이들이 장기적으로 블록체인 기술과 암호화폐가 현재의 지불결제 수단을 대체하거나 보완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특정 기술이나 발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만큼,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에 특정 기술이 어떻게 도움이 될지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필요할 것이다. 암호화폐 페트로와 관련해서 생각해볼 때, 블록체인을 사용한 암호화폐가 현재 베네수엘라의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리라고 생각할만한 근거는 충분하지 않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큰 기대를 갖는 동시에, 그것의 영향력에 대한 과대한 해석에 대해서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 각주

1) Reuters “Special Report: In Venezuela, new cryptocurrency is nowhere to be found” 2018.8.30.
https://www.reuters.com/article/us-cryptocurrency-venezuela-specialrepor/special-report-in-venezuela-new-cryptocurrency-is-nowhere-to-be-found-idUSKCN1LF15U
2) Bloomberg “Venezuela Is Now Awash in U.S. Dollars” 2019.6.18.
https://www.bloomberg.com/news/articles/2019-06-18/once-forbidden-u-s-dollar-is-suddenly-everywhere-in-venezuela
3) Sargent, Thomas J. "The ends of four big inflations." Inflation: Causes and effects.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2. 4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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