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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먼로 독트린의 부활 : 베네수엘라 사태

베네수엘라 송기도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2019/03/18

한 나라 두명의 대통령 : 선전포고 없는 외교전쟁

 

"나는 찬탈과 반역 정부의 종식을 보장하고 자유선거를 할 수 있는 베네수엘라의 임시 대통령으로서의 국가 경영자의 모든 권력을 떠맡을 것을 맹세합니다. 하나님과 국가가 우리에게 보상하게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과 국가가 그것을 요구하게  하십시오." 

 

2019년 1월 23일 후안 과이도(Juan Guaido) 베네수엘라 국회의장은 대규모 반정부 시위 현장에서 작년 5월에 치러진 대선이 주요 야권 후보의 가택연금 등으로 불공정하게 치러졌다는 이유를 들어 무효임을 주장하고 스스로 과도정부의 임시 대통령임을 선언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즉각적으로 과이도 임시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은“베네수엘라 국회가 헌법을 발동해 마두로(Nicolas Maduro)대통령이 불법이라고 선언했고, 나는 과이도 의장을 베네수엘라의 임시 대통령으로 공식적으로 인정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군사행동은 고려하고 있지 않지만 마두로가 야당 및 시위대에게 무력을 사용한다면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우익성향의 정부들도 미국의 예에 따라 지체없이 과이도 지지를 선언했다. 브라질 외교부는 23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브라질은 과이도 의장을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하며 베네수엘라가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사회적 안정을 찾는 과정에서 정치·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칠레, 콜롬비아,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페루 등도 과이도 임시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속속 발표했다.

 

1월 26일 마두로 대통령에게 8일간의 말미를 주고 새로운 대선 실시 계획을 밝히라고 요구했던 독일, 프랑스, 영국, 스페인 등 유럽 주요 국가들도 과이도 의장을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유럽연합(EU) 차원에서 추진했던 ‘과이도 임시 대통령 공식 인정’ 성명은 이탈리아 등 일부 회원국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반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4일 마두로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지지를 표시했다. 러시아 대통령궁은 “푸틴 대통령이 베네수엘라의 정치적 위기가 외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고 마두로 대통령에게 지지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성명에서 “다른 국가의 간섭은 국제법의 근본 규칙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군사개입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지적하고, 미국과 유럽이 베네수엘라에 대한 정치 간섭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중국은 “베네수엘라의 독립과 안정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지지한다.”며, “베네수엘라 자국 문제에 대한 외부개입을 반대한다.”라고 발표했다. 멕시코, 쿠바, 니카라과, 볼리비아 등 라틴아메리카 좌파정부들은 마두로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이란, 터키, 시리아 등도 마두로 대통령을 지지하였다.

 

멕시코는 우파 정권이 집권할 당시에는 마두로 정권에 비판적이었지만 2018년 12월 좌파 성향의 오브라도르(Lopez Obrador)정권이 들어서면서 에스트라다 독트린(Estrada Doctrine)을  강조하며 전통적인 불간섭주의로 회귀했다.

 

2월 28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는 베네수엘라의 대선을 다시 치르자는 미국측 결의안과 미국의 구호품을 회수해야 한다는 러시아측 결의안이 잇따라 부결됐다. 안보리 이사국도 극명하게 편이 갈렸다. 냉전 시기 안전보장이사회의 모습이었다. 미국의 결의안엔 러시아와 중국이, 러시아의 제안에는 미국과 영국, 프랑스가 거부권을 행사하였다. 둘로 갈라진 국제사회의 역학구도를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베네수엘라의 합법적 대통령이 누구인지를 놓고 세계가 둘로 갈라져서 외교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아니 보다 정확히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간의 싸움에 중남미 국가들 그리고 세계 모든 국가들이 끼어든 셈이다. 현실적으로 미국의 군사적 침공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과이도를 앞세운 미국의 외교적, 경제적, 군사적 압박과 마두로의 방어가 베네수엘라 사태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미국은 베네수엘라의 마두로를 공격할까? 우리나라 대다수 보수언론들이 보도하는 것처럼 ‘독재자’ 마두로로부터 고통받는 베네수엘라 국민들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하기엔 많이 부족하다.

 

먼로독트린의 폐기

 

1832년 먼로 대통령에 의해 천명된 ‘먼로독트린’은 미국이 구대륙(유럽)의 문제에 간섭하지 않는 대신, 구대륙 국가들도 신대륙(아메리카) 문제에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미국의 고립주의 외교정책을 문서화한 것이다. 실제적으로 처음에는 효력이 없었지만 1890년 이후 먼로주의는 점진적으로 확대 해석되었으며, 미국이 세계 열강의 대열에 들어서면서 먼로주의는 점차 그 영향력을 인정받게 되었다. 국제정치학자인 모겐소 교수(Hans Mogenthau)는 “이는 서반구에서 유럽 국가들의 영토 획득과 정치적 영향력을 제어하고, 그럼으로써 미국이 행동의 자유를 갖게 했으며, 현대에 있어 가장 큰 영향권을 일방적으로 선언한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먼로 톡트린 이후 미국의 대 라틴아메리카 정책은 이 지역에 외부대륙 세력의 침투를 막는 것과 이 지역을 미국의 절대적 영향하에 두는 것이다. 파시즘의 확장을 막아내며 제2차 대전에서 승리한 미국은 소련 공산주의 세력의 침투를 막기 위해 지역문제에 무차별 개입했다. 54년 과테말라 침공,  61년 쿠바,  64년 브라질 쿠테타 개입, 65년 도미니카 침공,  73년 칠레 쿠테타 개입, 81년 엘살바도르 개입, 83년 그라나다 침공,  89년 파나마 침공 등을 들 수 있다. 미국과 중남미의 관계는 ‘한 마리 고양이와 스무 마리의 쥐’로 표현될 정도로 미국의 일방적이고 자의적인 ‘공격’과 중남미 국가들의 수동적 ‘방어’내지는 ‘굴종’의 관계로 이루어졌다, 중남미에서 발생한 모든 주요한 정치적 사회적 사건의 배후에는 미국의 ‘보이는 손’이 작용했으며, 미국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미국의 일거수일투족은 중남미 국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서면서 남미의 정치지형이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1999년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를 시작으로 2002년 브라질의 룰라와 칠레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 2003년 아르헨티나의 키르츠네르, 2006년 라파엘 꼬레아 에콰도르 대통령, 알란 가르시아 페루 대통령,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 등 좌파정부가 들어섰다. 2011년에는 남미 12개 정부 가운데 10개 국가가 좌파정부였다. 그리고 그 가운데 반미의 선봉장은 ‘21세기 사회주의’를 주장한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이었다.

 

차베스는 남미도 유럽연합처럼 하나의 통화와 여권을 갖는 하나의 대륙이 되기를 바랐다. 이는 19세기초 남미의 독립영웅 시몬 볼리바르의 꿈이자, 차베스가 추진한 볼리바리안 혁명의 목표였다. 이를 위해 카리브 해와 안데스 지역의 빈국들이 2004년부터 고유가로 어려움을 겪자 낮은 가격으로 석유를 공급하며 유대를 강화했다. 또한 볼리비아, 에콰도르, 니카라과, 쿠바의 좌파 정부들과 ‘아메리카를 위한 볼리바르동맹(ALBA)’을 결성해 경제 교류와 정치적 단결을 도모했다. 또한 남미 12개국 모두가 참가하는 ‘남미국가연합(UNASUR)’과 2011년 미국과 캐나다를 배제하고 그동안 아메리카 대륙에서 ‘왕따’ 당해왔던 쿠바를 포함한 중남미 33개국 모두가 참가하는 ‘중남미·카리브해 국가공동체(CELAC)’를 만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렇게 중남미 국가들의 통합을 심화시키는 동시에 이들 국가들의 정치, 경제에 압도적인 힘을 행사해왔던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켰다.

 

2013년 11월 18일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라틴아메리카 국가와의 관계 개선을 천명하면서 워싱턴에 있는 미주기구(OAS) 본부에서 “먼로 독트린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더 이상 중남미 국가들에게 ‘갑질’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190년 동안 아메리카 대륙에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보호자’를 자처한 미국의 자의적인 월권행위가 종식되었음을, 다시 말해 이제 미국이 더 이상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국내정치의 혼란과 중남미의 우경화

 

2013년 3월 5일 차베스 사망후 후계자로 지목된 마두로 부통령은 차베스 세력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지 못한 채 출범했다. 2013년 대통령 선거에서 차베스 추모 열기에도 불구하고 50.6%의 득표율로 야권후보에 1.5% 안팎의 매우 근소한 표 차이로 당선되었다. 출범한지 얼마되지 않은 마두로 정부는 국제석유가격의 급락으로 어려움에 직면했다. 석유산업이 국가 수출의 96%, 정부 수입의 60%를 차지할 정도를 '석유 의존형'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는 베네수엘라는 2014년 중반 이후 국제유가의 급락으로 경제가 위축되기 시작했다. 2014년 배럴당 110달러에서 2015년 60달러, 2016년 25달러까지 떨어졌다. 이에 따라 2014년 -3.89%를 기록한 경제성장률은 16년 -16.46%, 18년 -18%로 5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했으며, 초인플레를 겪고 있다. 마두로 정부가 유가하락과 미국의 경제제재에 대응하여 경제안정을 위해 시행할 재정 및 금융정책이 오히려 극소수의 정부 친화적 자본가들에게 특권화되기 쉬운 기회를 주었고 고위 공무원의 부정부패를 조장하였다. 구체적으로 경제 위기의 원인 중 하나로 볼리바르화 공식 환율이 실제 시장과 달리 정부에 의해 지나치게 고평가되면서 발생한 기만적 수입이 지적된다. 

 

더구나 차베스 사망후 첫 총선거인 2015년 선거에서 야당연합은 167석중 67%인 112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었다. 이는 1998년 대선 패배 이후 17년 만의 야권 승리였다.  이후 마두로 정부는 야권의 공격으로 정치적 어려움에 처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2018년 12월로 예정된 선거를 5월 20일로 앞당겼다. 그러나 주요 야당 인사들을 여러 명목으로 선거에 못 나가게 한 상태에서 선거 날짜를 임의로 앞당겼기 때문에 야권은 선거를 보이콧했다. 어쨌든 득표율 67.8%로 마두로는 2019년 1월 11일부터 2기 임기를 시작했지만 미국, 유럽 등은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특히 1월 23일 베네수엘라 의회는 공식적으로 마두로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국회의장인 후안 과이도를 임시 대통령으로 하는 과도정부 수립을 선포했다.

 

국내적인 변화 못지않게 베네수엘라가 인접한 미주의 국제질서에서 커다란 변화가 나타났다. 좌파성향의 대다수 인접국가들이 우파 또는 극우정권으로 바뀐 것이다. 2015년 11월 아르헨티나에서 마우리시오 마크리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12년 만에 좌에서 우로 정권이 교체되었다. 이에 따라 남미에서 우파정부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2016년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나며 14년간 계속된 좌파정부가 끝나고 우파성향의 테메르가 취임했으며, 페루에서 우파성향의 쿠친스키가 당선됐다. 2018년에 칠레(피녜라), 콜롬비아(이반 두케), 파라과이(아브도 베네테스)에서 우파 정부가 출범했으며, 브라질의 트럼프로 불리는 극우성향의 보우소나루가 브라질 대통령에 당선됐다. 남미를 15년 가까이 휩쓸던 ‘핑크 타이드’가 몰락하고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를 제외한 주요 국가들이 모두 우경화했다. 중남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쳐왔던 미국에서도 2017년 1월 20일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했다.

 

먼로독트린의 부활

 

트럼프 정부는 2017년 8월 5일 미국의 금융기관들이 베네수엘라 정부 및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PDVSA)가 발행한 채권 및 부채에 대한 금융거래를 전면 중단하는 것을 골자로 한 경제제재 조치를 발표했다. 이후 베네수엘라가 외환부족을 금 수출을 통해 만회하려 하자 2018년 11월 미국은 베네수엘라 금 거래 중지 조치를 취했다.

 

마두로 대통령의 실정으로 베네수엘라 경제가 파탄나고,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칠레, 파라과이, 페루 등에 우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새로운 지역협력체 ‘프로수르(PROSUR)’를 결성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남미 우파 정부들이 과거 베네수엘라 주도로 결성되었던 남미국가연합(UNASUR)에 맞서 우파 정부들의 동맹인 프로수르 결성을 추진하고 있다.

 

콜롬비아는 두케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8년 8월 UNASUR를 탈퇴했다. 2019년 1월 1일 취임한 보우소나르 브라질 대통령은 “이제 브라질 국기가 붉게 물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남미 우파 정권들과 자유주의 동맹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었다.

 

2월 25일 보고타에서 열린 리마그룹 회의에 참석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이제 때가 됐다. 베네수엘라에서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싸움에 구경꾼은 있을 수 없다.”라며, “우리는 베네수엘라에서 평화적으로 권력이 이양되길 기대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분명히 밝혔듯이 모든 옵션은 테이블 위에 있다.”고 밝혔다. 기존의 UNASUR는 10년 전에 미국의 영향력에 대응하기 위해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주도로 결성되어 남미 12개국이 모두 가입했지만 현재 6개국만이 남아 있다.

 

이반 두케 콜롬비아 대통령은 1월 14일 지역 라디오 프로그램 오예칼리(Oye Cali·안녕 칼리) 인터뷰를 통해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과 함께 PROSUR를 만들어 UNASUR를 끝내버릴 것”이라면서, “PROSUR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지키는 남미 국가 간 공공정책 협력 기구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이어 “베네수엘라 좌파 독재 체제를 끝장내면 UNASUR도 와해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동안 반신자유주의(anti-neoliberalim)와 반미주의를 주장하며 볼리바리안 혁명을 추진해온 차베스의 베네수엘라는 미국의 대 라틴아메리카 정책 추진과정에서 최대 걸림돌이었다. 중남미에서 미국의 대안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던 차베스의 베네수엘라는 미국의 입장에서 매우 위험한 국가였다. 그러나 달리 대처할 방법을 찾지 못하며 지난 15년 동안 차베스에 끌려가던 미국이 차베스가 없어진 베네수엘라를 다시 예전의 위치로 돌려놓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70년대 후반 지미 카터 대통령의 인권정책으로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현저히 약화됐다. 이에 대한 반발로 로널드 레이건은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공산주의의 확장을 억제하기 위해 ‘새로운 보수(new conservertism)’를 주장하며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리고 엘사바도르를 시범케이스로 천명했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며 집권한 트럼프 대통령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지난 20년간 약화된 미국의 위상을 강화하는 첫 번째 장소로 베네수엘라를 선택했다. 2013년 폐기된 먼로독트린이 중남미 국가들의 우경화와 베네수엘라 내부 혼란을 기회로 부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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